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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미술관 - 클로드 모네 의 작품 덧글 0 | 조회 485 | 2017-02-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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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카퓌신대로 1873

     벨-일 연안 1888

     건초더미 1884

     루앙대성당 (석양)1894

    루앙대성당 (정오) 1894

푸쉬킨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네의 그림들입니다

진품은 없고 모두 모작이네요

인상파의 시작이었던 모네의 그림을 보며

원근의 표현과 빛에 대한 표현을 알게 됩니다

뭔가 친근함이 깃드는 것 같습니다

 

모네는

클로드 모네는 파리에서 태어나,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르아브르로 이사했다. 르아브르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그가 후일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곳에서 노르망디 바닷가와 시골을 탐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곳에서 급격히 변화하는 날씨가 바다와 육지에 미치는 효과를 관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방화가 외젠 부댕의 회화 기법이 모네의 표현법에 평생토록 영향을 주었다. 부댕은 모네에게 야외에서 직접 눈으로 관찰하며 그리는 '외광회화'의 개념을 소개해주었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파리로 간 모네는 전통주의자인 샤를 글레르의 화실에 들어가 후일 인상주의 화가 동료가 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만난다. 모네는 다수의 풍경화, 바다 풍경화, 초상화들로 연례 살롱전에 통과되어 일정부분 성공을 거두었으나, 대규모의 좀 더 도전적인 작품들은 거절당했다. 살롱전에서 <정원의 여인>(1866)과 같은 작품들이 거절당하자, 쓰디쓴 실망감을 느낀 모네는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카미유 피사로, 르누아르 등과 함께 무명미술가협회를 설립했다. 이 협회는 1874년에 처음으로 독자적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모네가 이 무명미술가 협회전에 제출한 <인상, 해돋이>(1873경)는 외관상 마무리가 덜 되어 보여서 평론가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이 그림의 제목을 차용하여 무명미술가 협회전을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고 조롱하는 혹평을 했다. 하지만 무명미술가협회의 화가들은 낙심하지 않고, '인상주의자'라는 야유 섞인 용어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러한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주도권을 잡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새롭고 매우 성공적인 작업 방식을 연마해나갔다.

모네는 무엇을 그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과 장소들을 그림의 소재로 채택하곤 했다. 자신의 두 아내를 모델로 삼았고, 정원, 파리의 건물, 노르망디 해안과 전원,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하던 지베르니에 있는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모네가 살던 전원적인 환경은 친구들을 끌었다. 마네와 르누아르 등이 파리의 혼잡을 피해 모네의 집에서 잠깐의 조용한 휴식을 즐겼다. 모네는 19세기 초부터 바르비종파의 관례를 따랐으나, 야외에서 풍경을 대충 스케치한 후에 화실에서 그림을 마무리 짓던 바르비종파 화가들과 달리, 모네는 대규모 캔버스에 그릴 때조차도 야외에서 모든 작업을 끝마쳤다.

자연광 속에서
자연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포착해내고 싶어 했던 모네는 서양 풍경화의 양식에서 벗어나 동양 미술,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 목판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각의 과정과 그것이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에 매료되었던 모네는 '건초더미'(1888~1894), '포플러'(1892), '루앙 대성당'(1892~1894)과 같은 연작 그림들에서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이 작품들은 똑같은 풍경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을 각기 다른 그림들로 그린 것이다. 명암이 마치 고체처럼 만질 수 있는 실체를 가진 것으로 보여, 회화 역사상 이정표가 되는 작품들이다. 모네의 후기 활동은 지베르니에 있는 수련 연못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품들은 초대형의 벽화와 같은 캔버스 형식을 취했다. 식물들과 물이 색의 추상적인 환영 속에 녹아있고, 물감을 십자형으로 두껍게 칠하여 독특한 질감을 창조했다. 모네가 죽은 직후에, 프랑스 정부는 튈르리 공원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모네의 마지막 수련 연작을 설치했다.

인상주의의 탄생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3)는 인상주의의 발달 과정 중에 그 이름을 지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작품의 주제는 프랑스 르아브르에 있는 항구를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모네는 밝은 오렌짓빛 태양이 희미한 바다 안개 속을 뚫고 떠오르는 것과 햇빛이 수면에 반사되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 느슨하고 의례적인의 화법을 구사했다.
파리 풍자잡지 『르 샤리바리』의 미술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1874년에 열린 인상주의 화가들의 독자적인 전시회에서 이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인상 - 그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상을 받았고, 저 그림 속에는 어떤 인상이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얼마나 자유롭고 편한 솜씨란 말인가! 저 바다 풍경이 걸리기 이전의 벽지 상태가 저 바다 풍경화보다 더 완전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러한 평가에 흔들리지 않았다. 후일에, 모네는 지금은 유명해진 해돋이 그림의 제목을 선정하게 된 사연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풍경화는 단지 인상일 뿐이고, 순간적인 것일 뿐이기에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유래했다. 알다시피 나 때문에 우리에게 붙게 된 꼬리표이기도 하지만, 나는 르아브르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안개 속의 태양을 그리고, 배의 돛대들을 전경에 그려 넣은 그림을 보냈다. 그림의 제목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르아브르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담을 수 없었기에 "<인상>이라고 적으시오"라고 말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미리 머릿속에 그림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501 위대한 화가, 2009. 8. 20.,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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